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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가르시아장군에게 보내는 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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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는 미국의 출판업자 엘버트 허바드가
아들로부터 전해 들은
미국과 스페인 전쟁(1898년)의 영웅 로이 완 중위의 무용담을
1899년 2월 자신이 발간한 잡지에 게재한 글이다.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는 출간된 후 15년 동안 독일 프랑스, 스페인, 터키,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전 세계에서 4000만 부나 팔려 나갔고,
특히,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전방으로 배치되는 모든 러시아군 병사에게 이 글을 읽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는 주어진 임무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웅변해 주는 감동적인 글이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를 생각게 하는 글이다.

기업체 등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

나는 쿠바 사변 시 불쑥 튀어나와  혜성처럼 빛나는  공헌을 이룩한 어느 영웅을 잊을 수가 없다.

누가 그를 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시 쿠바에서 스페인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속국)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미국 대통령은 게릴라 군 지도자인 가르시아 장군에게 긴급히 연락해야 할 일이 생겼다.

누군가가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각하, 아무도 그 일을 해낼 수 없다면 로이완이라는 사람을 보내시면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가르시아장군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로이완은 대통령으로부터 가르시아에게 전해야 할 밀서를 직접 받았다.

로이완이라는 군인이 대통령 밀서를 방수 봉투에 싸서, 그것을 어떻게 가슴에 품었으며, 4일간의 여행 끝에 어떻게 밤중에 보트로 쿠바의 해안에 도착했으며, 어떻게 정글로 사라졌는지. 그리고 3주 만에 쿠바의 반대쪽으로 가서 어떻게 도보로 낯선 나라 땅을 섭렵하다가 가르시아장군에게 대통령의 밀서를 전했는지 - 나는 이 모든 것에 관하여 상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행동과 정신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로이 완 중위에게 가르시아에게 전해야 할 밀서를 주었다.
그때로이완은 대통령 밀서를 받고 다음과 같은 반문을 하지 안 했다. “각하, 가르시아 장군은 지금 어디에 있는 줄 아세요?”

나는 소원 하나가 있다.

로이 완 동상을 이 땅의 각 대학 교정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가치 없는 서적이나 이런저런 지시가 아니라, 청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임무 완수 ㅡ 즉각 실천, 분투노력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는 것이다. 즉 가르시아에게 밀서를 전하는 것이다.

가르시아 장군은 이미 죽었다. 그러나 제2의 가르시아들이 있다.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무능하고 무성의한 사람이 제2의 가르시아들에게 밀서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까?

무기력한 지원, 어리석은 부주의, 꼴불견의 무관심, 그리고 믿음성이 없는 일 처리가 규칙인 양 통용되고 있는 것은 비극이다.
그리고 사기와 핑계, 협박과 공갈, 불로소득을 일삼는 사람치고 크게 성공한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선하신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신다.

그리고 선한 사람에게는 빛의 천사를 보내어 적극적으로 후원하신다.

한번 시험해 보라.

지금 당신은 당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여섯 명의 사원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다,

그중에 한 명을 불러 일을 시켜 보라.

“백과사전을 꺼내어 코에 기오의 일생에 관하여 간단히 찾아 주시겠습니까?”

이런 경우 그 사원이 정중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과연 그 일을 하러 갈까?
천만의 말씀,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 사원은 당신을 흘겨보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질 것이다.

“그가 누구죠?”

“어느 백과사전에서 찾아볼까요?”

“백과사전은 어디 있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채용되었나요?”

“비스마르크란 사람 말인가요.”

“찰리에게 시키시죠.”

“그는 죽은 사람입니까?”

“백과사전을 갖다 드릴 테니 직접 찾아보시죠.”

“왜 그것을 원하시죠?”

그러면 십중팔구 당신은 그런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해주고, 사전 찾는 법을 설명해 주고, 그것을 내가 왜 원하는지 상세히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면 그 사원은 당신이 시킨 것을 마지못해서 찾으러 갈 것이다.

코레 기오를 쉽게 찾기 위해 다른 사원을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와 “그런 사람은 백과사전에 없다"라고 애매하게 보고 할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 경우 만약 당신이 현명하다면 일을 시킨 사원에게 코레기오는 “ㄱ" 난이 아니라 ”ㅋ“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친절히 웃으면서 “수고했네”라고 말한 후 직접 가서 코레기오의 일생을 찾을 것이다.

이 같은 독립심의 부족, 창의성의 결핍 - 이 모든 것이 사회생활의 악습으로 남는다면 미래는 좀먹게 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자발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과연 인류를 위해 무슨 공헌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쓸모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속기사 모집 광고를 내보라. 그러면 대부분의 응모자들이 글을 바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한심한 것은 그들은 “글을 정확히 쓸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를 작성할 수 있을까?

어느 대형 공장을 방문하였을 때 그 공장의 한 간부가 말했다. "저 경리 사원을 아시죠? “

“아, 왜요?”

“뭐랄까, 그는 장점이 많은 경리 사원입니다.

주택가에 심부름을 보내면 일을 잘 해낼 능력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부름을 보내면 그는 심부름 가는 길에 술집을 4차례 돌면서 술을 마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택가에 도착할 무렵에는 그가 무엇을 하러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조차 모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를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최근에 “공장에서 버림받은 일꾼” 혹은 “정당한 고용을 요구하는 정처 없는 방랑자”와 같은 값싼 동정의 말을 가끔 들을 수가 있다,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고용주들에 대한 거친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

고용주는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다 보면 원하지 안 하도 겉늙기 마련인 것 같다.

대부분 고용주는 자기의 빵만을 벌기 위해 일하는 무능력자도 가능한 한 구제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런 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끝내 깨닫지 못한다면 조치를 취하게 된다.

도처에 산재된 각 업소와 회사에서는 지금도 무능력자 퇴출 작업을 계속한다.

고용주는 누구든지 꾸준히 회사에 이익을 안겨주지 못하는 무능력자를 추방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에 유능한 자를 고용하려고 한다.

경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런 작업은 계속된다.

그리고 경기가 둔화되어 일자리가 귀하다면, 무능력자 퇴출 작업은 좀 더 철저히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이익이 안 되고 가치 없는 사람만이 쫓겨나거나 밀려난다는 점이다.

그것은 적자생존이다.

사업이란 이익 추구이기 때문에 고용주는 누구나 이왕이면 최대의 이익을 안겨줄 사람들을 찾고 있다.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를 전해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나는 본인의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처신을 잘 못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누구에게나 가치가 없다.

그는 항상 고용주가 자기를 억압하는 것 같다는 불신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명령을 내릴 수가 없다.

그는 명령에 순종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를 주면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이 직접 하시지요!”

오늘 밤에도 그런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거리를 누빌 것이다.

찬바람이 그의 누더기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뼈마디를 에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불만의 불씨다.

그런 사람은 이성이 마비되어 있다.

그런 사람을 즉시에 정신 차리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몽둥이찜질을 하겠다고 경고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나는 육체적 장애인처럼 정신적 장애인도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살필 바엔 차라리 큼직큼직한 업무처리를 위해 밤낮으로 수고한 사람들이나 도와주도록 하자.

그런 사람들의 근무시간은 호각소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관심과 배신 그리고 몰지각 때문에 그들의 머리카락은 빨리 희어지는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하고 정처 없는 사람이다.

너무 심한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출세한 사람에게 격려의 말을 보내고 싶다.

- 출세한 사람들은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선도하여 출세시키지만, 따지고 보면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실제로 노동자 생활도 했다. 그리고 나는 고용주 생활도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양자를 향해서 말할 자격이 있다.

가난은 결코 자랑거리가 못된다.

누더기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미덕의 사람일 수 없듯이 모든 고용주가 다 욕심꾸러기나 착취자 일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고용주가 회사에 있을 때처럼 그가 외출했을 때에도 똑같이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게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밀서를 주면 군소리 없이 그것을 받는다.

그런 다음 그는 철저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사명을 완수한다.

그는 과분한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문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런 사람을 찾게 된다.

그런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환영받게 된다.

모든 도시나 농촌 - 모든 사무실, 회사, 상점, 그리고 공장에서 그런 사람을 원하고 있다.

전 세계가 그런 사람을 원하고 있다.

가르시아에게 보내는 대통령의 밀서를 틀림없이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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